게스트도 디제이도 어설픈 희한한 라디오가.. <있다!> 되새김




사람이 단순 업무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다보면 사람이 아니게 된다. 사랑하는 소설 <캐비닛>에서
난쟁이 공장 아가씨는 아주 작은 나사 부품을 다루는 일을 한다. 아가씨가 하는 나사 조립은 굉장한
단순 노동인데 그 곳에서는 라디오를 틀어주지 않는다. 열 몇 시간을 그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면서
아가씨는 점차 정신과 육체를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두 명이 되어서 한 명의 나는 여기서 나사를 조립하고 있는데, 또 다른 나는 길거리로 나가 영화도 보고,
초등학교 운동장도 돌아다닌다. 매일 그 일을 반복하는 아가씨는 자유로운 두 번째 육신을 매일 뒷산에 가서
태웠다. 말이 안되지만 이 소설의 대부분이 그런 식. 잠을 2년 동안 자고 일어난다든가, 손에서 은행나무가
자란다든가. 아가씨는 자기를 태우면서 이런식으로 중얼거렸던것 같다. "자유롭고 아름다운 나는 다 타서 없어지고
지겨운 나만 살아남아서 공장에 출근하는구나" (책이 지금 없어서 정확히 기억이 잘안남)

아마 라디오가 돌아가고 있었다면 난쟁이 아가씨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을 거다. 사람들 이야기랑
노래가 쉴새없이 흘러나오니까. 그러니 라디오는 아마 단순 업무하는 사람들에게 라디오 그 이상의 존재다.
제품 불량률이 높아진다며 라디오 못듣게하는 회사들은 각성하라. 불량률 걱정하다가
직원들 정신에 오류 걸리면 책임질거임
?



오후 3시에 ebs(104.45)에서 루시드폴이 진행하는 <세계음악기행>(이하 세음행)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이리 길어졌다. 정작 세음행 얘기는 별로 못할듯ㅋㅋㅋㅋㅋ지금도 루시드폴 라됴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단순 마우스 업무를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수행하고 가는 서울 어느 후미진 사무실의 알바생이다. 
업무를 하면서 라디오가 필요해졌고, 두시 탈출 컬투쇼를 일주일 정도 즐기다가, 박장대소하며 웃지 못하는
괴로움이 커져 탐사를 떠났고, 이 프로를 알아냈다. 

기쁘게도 세음행은 애청자들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루시드폴 음악처럼 좋아하는 이들은 꽤 있지만
어디에나 있지는 않다. 청취자들은 여행에 가서도 사연을 보내오고, 요새 찾아보기 힘든 그림엽서, 손엽서같은
것들을 보내온다. '세계음악기행'이니만큼 전혀 상상해보지 않았던 각국 음악들이 다 나온다. 이걸 들으면
스페인이나 낯선 콜롬비아로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뚱땅뚱땅거리는 이집트 음악, 버터 바른 발음으로 내 귀를 녹여버리는 프랑스 음악, 살사나 플라멩고까지! 
귀가 호강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음악들만 쏙쏙 골라서 틀어준다. 일주일만에 질려버리는 기계음 떡칠
 후크송이나, 지나치게 절규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발라드로 지친 귀를 쉬게 할 수 있다.
한 가지 단점은
노래 제목이 "la melodie du bonheur" 이런 식이라서 한 번 듣고 좋았더라도 다시 기억해서 찾아보기엔 쉽지
않다는 겈ㅋㅋㅋㅋㅋ 폴님도 맨날 제목 읽어주느라 애먹는다. 물론 발음도 좋고 잘 읽어주긴 하지만 가끔 버벅거리는 건
어쩔수없음. 이해해여.

그리고 무엇보다 루시드폴 음악처럼 라디오가 참 잔잔한 재미가 있다. 심지어 한 청취자는
"노래는 잘들리는데 항상 폴님 목소리가 잘 안들려요"라는 불만을 토로하기도ㅋㅋㅋㅋㅋ 근데 폴님은 
"어쩔수없습니다. 소릴 크게 내면 힘들어서..."라며 계속 나긋나긋ㅋㅋㅋㅋㅋㅋㅋ얼마전 게스트로 나온
윤종신님은 오후 3시부터 4시에 듣기는 너무나 잔잔하다며 '시에스타 dj', 국내 최초의 '낮잠 디제이'라는 
걸출한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자꾸 십년 지난 언어 개그를 하는데 윤종신님쯤 되면 잘 받아쳐주지만, 
나루, 정재일씨같은 융통성없는 사람들은 '하...ㅅ하...'하는 한숨섞인 웃음만. 내가 다 진땀나ㅋㅋㅋㅋㅋㅋㅋ
보석같은 뮤지션들만 게스트로 나온다. 대부분 공중파에 잘 나오지않고 폴님보다도 더 유머감각 없는 사람들ㅋㅋㅋ
 근데 하나같이 음악들은 끼깔나다(?) 어제 나온 나루씨는 정말 답답할 정도로 말을 잘 못하셔서(지나치게
진지하고 얼어보였음) 안타까웠는데 기타 하나 들고 연주랑 노래 시작하니깐 완전 반해버렸다. 원래 누군지 몰랐는데
앨범에서 기타, 피아노는 물론이고 전 앨범을 혼자 만들다시피 한 천재란다. 나이도 27살밖에 안먹었어..
말만 조금 재밌게 한다면 인기가 더 많을 비주얼인데 ㅠㅠ

                                                                           나루씨. 웃어보아요ㅎ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 라디오 프로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늘어놓으니 좋다.
혹시 단순 업무를 반복해야하고, 1시간 정도는 라디오를 들어도 가능한 직장이라면 <세계음악기행> 강추!
참고로 뮤지컬, 전시회같은 것도 신청하면 거의는(?) 당첨된다ㅎㅎㅎ



아래는 세음행 홈페이지.
http://home.ebs.co.kr/musictravel/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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