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혼속생 블랙홀




아침부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블로그에 2,3년 전 썼던 책 리뷰들을 하나씩 모두 읽었다. 
언제나 과거의 나는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유독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내가 가장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던 시기였고 한 달에 한 번 리뷰를 쓰는 일이 
의무적이고 버겁게 다가왔었다. 그런데 리뷰를 하나씩 읽어보니 그래도 나는 
꾸준히 책을 읽었고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사실. 나는 내가 쓰는 글을 다시 보는 걸 참 좋아한단 걸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 일기장도 못 버리고 모아두고,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글 쓰는 걸 취미로, 업으로 삼고 있구나, 
언제부턴가 일을 위한 글만 쓰기 시작하면서 내 생각이 담긴 글을 두려워서 못 쓰고 있었다. 
전에는 내 자신이 먼저고, 그 담엔 친구, 가족이, 또는 우연한 누군가가 이 글을 읽을 생각을 하고 썼다면, 
지금은 항상 제일 먼저 볼 사람은 상사, 그 다음이 더 위의 상사, 그 다음이 기자들, md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니
표현에서부터 생각까지 전부 제한적으로 손발 묶인 것처럼 쓰고 있었다. 그러니 재미가 덜하지.   
 
며칠 전 앙꼬의 <삼십살> 을 읽었다. 정말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을 법한 생활과 감정들을 너무 솔직하게 
다 그리고 있었다. 일기장을 책으로 만든 거라 공감이 다 되지는 않았지만(그럴 필요도 없고) 
요가하다가 앞사람이 괄약근을 조이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든가 하는 정말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보니 재미가 있었다. (지금은 트위터가 있어서 그런 얘기들을 쓰곤 하지만) 정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에 안 내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나도 엄청나기 때문에 남이 그렇게 표현하는 걸 보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싸이에 글 쓰는 게 재밌었던 것도 어디다 말할 데 없는 오갈 데 없는 생각이나 있었던 일들을 쓰는 게 좋았고 
거기에 친구들이 재밌다고 반응해주는 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합니다

 




그때 몰랐던 것들 블랙홀




요즘 여혐에 관한 흐름을 보며 '착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는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상대를 자신의 틀 속에 넣어놓고 모난 부분은 갈아 없애기를 바라는 연애를 나도 해본 적이 있다. 

그시절 그의 여자 만나는 기준은 '착함'이였다.  
연상은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며 자기보다 몇 살은 어린 상대만을 만났었지. 
그 이유를 지금 추측해보자면 연하가 조금더 손에 쥐고 컨트롤하기 쉬워서가 아녔을까. 

거지같은 성격을 지녔지만 첫인상만은 순한 나를 오해한 까닭에 우린 만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자 만나기만 하면 싸웠다. 

나는 그가 요구하는 '좋아한다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라는 이름 하에 
강요되는 것들 중 단 한 톨도 허용할 수 없었다. 그 역시 모든 걸 낱낱이 따지고 드는 날 이해 못했다. 
그가 내게 바랐던 건 연인의 애정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아낌없이 줬던 '희생'이었다. 

도를 넘어선 희생은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치를 떨며 돌아선 그때를 추억한다. 
내가 나인 채로 살아갈 수 없다면 앞으로도 '착한 여자' 같은 거 하지 않으련다.  

한의원의 위안





졸린 금요일 오후.
금요일 오후는 유독 시간이 안 간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와 있는 듯.
한참 뭐 하다가 시계 보면 5분 지나있당


소화 기관만은 튼튼했던 나인데 요즘 자꾸 체한다. 
배도 계속 불러있고 덩달아 머리 아프고 어지럽고~.~ 

한의원에 갔더니 맥을 짚고 대번에 체한 게 맞다고 하면서  
"몸이 전체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네요, 몸이 약해지면 자주 체하게 돼요."
이러신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네"한다. 

한의원에 가면 이런 게 좋다. 정서적인 위안을 준다는 거. 
신발 벗고 들어가 따뜻한 침상에 누워 침을 맞고 부황도 떴다. 
만다라 그림이 걸려 있고, 명상 음악이 흘러나온다. 

따뜻한 침대와 몇 마디 말이 고픈 사람들, 어르신들은 그래서 더 한의원을 찾는지 모른다.
배를 문질러 주는 따뜻한 어머니의 손에 가장 가까운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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